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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투' 이슈가 ‘진보진영’을 향한 칼이 될 것이란 예상은 애당초 있었다. 소위 육신(肉身)을 가진 인간에게 신(神)의 기준을 들이 된다면 무사할 사람은 극소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설사 거기에 들었다 하더라도 존경보다는 조롱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르윈스키 스캔달로 미국 클링턴 대통령의 인기는 오히려 올라 간 것처럼 성적 욕망과 표출은 이해와 공감의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서구인들의 최고의 정치 지도자인 다윗왕을 보자. 다윗은 부하를 죽음의 전장으로 보내고 그의 아내 바세바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난 솔로몬을 왕위에 앉혔다. 결국 장자와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할 정도로 그는 큰 죄값을 치렀다. 그러나 그 일로 그의 정치적 권위에 흠집 내려는 사람은 없다. 그 외 알렉산더나 카이사르 같은 영웅도 있지만 사가(史家)들은 성적(性的) 결벽성(潔癖性)으로 인물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한국의 언론의 잣대로 재편찬 한다면 세계위인전집도 몇 권 안 남을 것이다.
광화문에 앉아 계신 세종대왕은 어땠을까? 보수들이 추앙하는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물론 성적 학대(sexual abuse)를 비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우월주의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뿐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띌 필요가 있다는 것도 공감한다. 그러나 용기만큼 중요한 것이 지혜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박 시장의 죽음 위에 이 시대가 가진 수 많은 모순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가 그 길을 걸어 왔고 또 마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한 반응은 합리적인 의식의 경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진보 정치인 한 명이 넘어졌다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 착취가 사라질까? 기자는 감히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집중하지 않거나 재론하지 않는 수 많은 성 범죄 사건들이 있었다. 일부 진보 정치인의 의혹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죄질이 나빴으나 가해자들은 대체로 가볍게 다 빠져 나갔다.
그들을 비호하는 전통화된 세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굳건하게 있다는 반증이다. 요즘 목소리 높이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들과 맹렬히 맞서 싸웠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장자연 사건처럼 약자를 자살에 이르게 한 가해자들에게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힘 없는 여성이 ‘전통적인’ 강자에게 성 추행을 당했다고 상정해 보자. 범죄 신고를 하기도 전에 만류와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신고하러 가서도 수모를 겪을 수 있다. 고발인 조사를 마치는 동안 피고는 시간을 벌고 대책을 세우게 된다. 피해 여성은 ‘꽃뱀’으로 매도 당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도 한다. 맞고소 당하며 신상이 탈탈 털리기도 한다. ‘미 투’는 그런 힘 없는 여성들을 위한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박시장의 ‘미 투’ 의혹을 포함해 지난 사건들을 보면 장자연 사건이나 김학의 사건 같은 ‘잔인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의 난도질은 형평성 시비의 수준을 넘을 만큼 의도적이고 기획적이라는 심정을 갖게 한다.
박시장의 죽음으로 진보정치 진영이 타격을 받을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보수진영의 반사이익은 없을 것이라 본다. 개혁의 속도에 다소 제동이 걸릴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미 투’의 도움이 진정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제 시민사회는 비판만 하는 방관자 신세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시민사회와 사회적 약자를 위협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려는 모든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의 진퇴에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시민사회가 결정한 적이 없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백태윤 선임기자 pacific1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