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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 "페미니스트 옹호자 결국 여성 피해자에 발목" 아이러니

기사승인 2020.07.13  16: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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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Feminist) 옹호자였지만 결국 여성 피해자에 발목을 잡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오전 열렸다.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는 황망함과 아쉬움 속에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 시장 영결식은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9시 10분까지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온라인 중계와 함께 40분간 진행됐다. 발인은 앞서 오전 7시께 마무리됐다.

박 시장의 시신을 담은 운구 행렬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쳐 '화장한 뒤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남 창녕의 부모님 산소 인근에서 영면에 들게 된다. 

공동장례위원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 시장은 우리 사회를 크게 바꿔놓은 시민운동가였다”며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국민으로서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과 40년지기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고인이 걸어온 길과 해낸 일이 너무나 크다”며 “그 열정만큼 순수하고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추모 분위기에 이어 박 시장을 둘러싼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날 오후 박 시장 고소인 측은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소인 측은 박 시장의 성추행이 4년간 지속됐다며 관련 의혹에 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피해자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국가는 성인지적 관점 하에 신고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와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소인은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2차 피해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며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면서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고소인 측은 이달 초 국가인권위원회에도 피해를 호소하며 관련 진정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박 전 시장을 옹호하는 측에서도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평생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한 시민을 위한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박 전 시장이 비록 성추행 피해 고소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사과 없이 세상을 등졌지만, 이것이 성추행 혐의에 대한 전면적인 수용을 의미하거나 피해 고소인의 주장이 모두 맞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박 전 시장은 유서에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면서도 정작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에 대한 ‘사과’를 직접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것이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필요 없다거나 동시에 자신의 성추행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는 반론이다.

박 시장의 마지막 유서 "미안하다, 죄송하다, 감사하다"란 짧은 문장에 담긴 내용은 예상치 못한 사태의 전개에 황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이 불가피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최소한의 즉자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박 전 시장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박 전 시장은 젊은 시절부터 줄곧 페미니스트 또는 성 평등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자의 편에서 이들의 권익을 옹호해 온 인권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아 왔다.

청년 시절인 1986년 그는 “권양…이름 없는 유명인사”로 시작하는 변론서로 유명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고, 중년 시절인 1999년엔 ‘서울대 신 교수(피해자 우 조교) 사건’을 승소로 이끌어 성희롱 형사사건과 관련한 획기적인 판례를 만들어 냈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에도 광역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시장 직속의 ‘성평등위원회’를 조직하고 ‘여성안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각계 인사들에게 자문해 시정을 운영했다.

그런 박 전 시장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성추행 피고소란 불명예스런 낙인으로 마감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이제 성 평등주의자로서의 삶과 성추행 의혹을 받는 인물 두 가지의 평가를 동시에 받게 됐다.

인권시민운동계의 한 인사는 "박 시장의 죽음의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그에 대한  성추행 고소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삶을 온전히 평가하고 완성하는 방법이다”며 "성추행 고소 내용에 포함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옹호자로서 평생 그가 걸었던 삶을 추모하는 방법이고, 그가 걸어온 길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지금 박 시장의 조문 정국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양극단으로 치닫는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삶과 죽음, 긍정과 부정, 과거와 현재를 오롯이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열린 인식과 지평의 확대 속에서만 가능하리라는 제언이다.   

정연미 기자 kotrin3@hanmail.net

<저작권자 © 축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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