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영어, 그 정도면 됐다

기사승인 2011.05.03  19:05:46

공유
default_news_ad2

 

 

염재호(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법학전문대학원에 가겠다고 준비하는 학생을 만났다. 혹시 변호사가 되면 안정된 직업에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인가 하고 물어봤더니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정치학을 공부했는데 그 일을 위해 변호사가 되는 길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기특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실패, 영어 점수 때문에

그런데 요즘은 무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작년에도 한번 도전했는데 실패해서 지금 입학준비를 위해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것이다. 학교 성적은 평균 4.0이 넘고, 토익 점수도 900점 정도였고, 법학적성시험인 LEET 점수도 웬만큼 받았는데 작년에 실패한 것은 아무래도 토익 점수가 조금 모자란다는 분석이었다. 토익에서 대여섯 문제를 더 맞혀야 합격권에 들어갈 것 같기에 한 달에 30만원씩 주고 유학파 전문 족집게 강사가 강의하는 학원에 세달 정도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는 무엇을 배우냐고 했더니 영어실력이 아니라 출제의도를 파악해서 답을 정확히 맞히는 요령을 배운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성적이 40점에서 50점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한 반에 약 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매일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학원과 강사는 한 반에서만 한 달에 6천만 원의 수익을 얻는 셈이다.

공정한 입시를 위해 점수화된 평가방법이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국내 변호사를 육성하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의 자격에서 토익 점수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넌센스다. 토플시험이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생활영어에 대한 시험으로 토플시험 출제기관인 ETS에 의뢰해서 만든 시험이 토익이다. 이십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대학졸업, 취업, 심지어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까지 활용되고 있으니 그 상품성은 대단하다. 그러기에 최근에는 국립대학과 언론사가 합작하여 유사한 시험을 만들어 상업화 대열에 끼어들었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상승되면서 영어의 필요성은 증대되었다. 십여 년 전 고려대학교의 영어강의 의무화 정책에 참여했던 필자도 당시에는 학생들이 영어로 인해 졸업 후 너무 많은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이 정책에 찬성했다. 마치 197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 내수시장도 미약했지만 수출지향 산업정책을 추진했던 것 같은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서 대학 강의의 40%이상이 영어로 진행되고, 국문학이나 국사 과목에서도 영어강의를 의무화하는 지나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론사와 교육당국의 대학평가에도 영어강의가 필수 항목이 되어 전국 대부분 대학들이 교수임용에 영어강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오역,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몰라서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80년대 초 대학원 입학자격 시험인 GRE가 무엇인지 몰라 수소문 끝에 문제집 한 권을 구해 복사해서 나누어 보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미국에 가서 영어로 박사학위 받았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영어의 열풍은 지나치다. 유치원부터 영어학원에 다니고 미국 학부 유학생이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외무고시뿐 아니라 BK 후속사업으로 국내 대학원 박사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하는 글로벌 Ph. D. 사업에서도 영어로 발표하고 영어로 면접하도록 한다. 국제화된 인재를 키우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학부의 해외유학을 부추기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최근 외교통상부의 한-EU FTA 국회비준 과정에서 한글 오역문제로 시끄러웠다. 정부가 제출한 오역 207건을 들여다보면 영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한국어를 몰라서 틀린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시외버스를 시내버스로, 공무원시험을 성인고시로 번역한 것은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한국 사정을 이렇게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그 정도면 됐다. 오히려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할지 모른다. 토익 점수 몇 점 더 받고, 의미 없는 자격증 따기 위해 대학생들이 사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은 막아야 한다. 기성세대의 무지와 아집으로 학생들만 멍들어 가는 건 아닌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염재호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고려대 법대 졸업
·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박사
·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 한국정책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딜레마 이론> 등

관리자 kotrin2@hanmail.net

<저작권자 © 축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ad37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