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너와 나의 그림, Feeling, Telling』 발간
권윤희 작가의 문인화 사랑은 이채롭다.
흔히 회자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에도 꾸준히 문인화를 주제로 한 책을 발간하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나온 『너와 나의 그림, Feeling, Telling』은 이 분야에서만 저자의 6번째 저작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 즉 감정이나 감성까지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감성 지능은 기계문명에 빼앗길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간의 삶과 행복은 감성의 자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무리 AI시대라 할 지라도 인간의 감성지능의 발견과 확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시대가 인공지능이 주를 이루는 이성이 최고조로 발현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을 중시하는 감성의 시대로 점차 옮겨가게 됨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문명의 발전은 새로운 가치의 추구를 요구하고 있다" 면서 "문명과 사회가 발달할수록 역으로 인간이 가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잠재능력을 함께 계발시킬 수 있는 감성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이를 통하여 결국 인간의 삶이 윤기와 더불어 더욱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박사(동양미학)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 초빙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동양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 문화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 서예협회 문인화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또한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에 대하여 중앙대와 한국외대의 접경 인문학 연구단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저자는 문인화의 개념과 가치, 심미를 연구의 주제로 삼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조선 문인의 예술을 연구한 있으며 풍죽 문인 화가로 세 번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네이버 블로그예술과 철학이 함께 하는 공간 ; uni-lab 美探 http://blog.naver.com/uni-lab 참조)
■ 『너와 나의 그림, Feeling, Telling』 목차
Ⅰ. 나의 꿈속의 이상향 : 도원(桃園)
① 단원 김홍도의 <무위귀도도>
② 연담 김명국의 <달마도>
③ 안견의 <몽유도원도> 1
④ 안견의 <몽유도원도> 2
Ⅱ. 조선 선비의 정신 : 고절
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②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
③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④ 탄은 이정의 <풍죽도> 1
⑤ 탄은 이정의 <풍죽도> 2
Ⅲ. 한적과 자적, 그리고 초탈 : 응시와 초탈
①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② 겸재 정선의 <독서여가도>
③ 이상좌의 <송화보월도> 1
④ 이상좌의 <송화보월도> 2
⑤ 겸재 정선의 <시화상간도>
⓺ 고람 전기의 <계산포무도>
Ⅳ. 우리 산수의 또 다른 감상 : 와유(臥遊)
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② 허주 이징의 <연사모종도>
③ 허주 이징의 <니금산수도>
④ 김시의 <동자견려도>
⑤ 허주 이징의 <고사망월도>
Ⅴ. 시대를 앞서 간 情感 : 동물의 그림
① 남계우의 <호접도>
② 이암의 <화조묘구도>
③ 공민왕의 <이양도>
④ 사임당 신씨의 <초충도>
Ⅵ. 호연(浩然)의 마음, 그림에 담다
① 공민왕의 <기마도강도> 1
② 공민왕의 <기마도강도> 2
③ 무명씨의 <총석정도>
⓸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⑤ 이흥효의 <설경산수도>
■ 저자의 변(辯)
예술은 곧 정신경계의 발견이다. 자신의 예술을 통하여 아니면 다른 작가의 예술을 통하여 여기에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정신경계는 보이지 않지만 예술이 추구하는 본질이며 원천이다. 동양의 예술은 곧 유가와 도가 사상의 결합으로 인간과 자연이 중심이다. 이는 서로 대대(待對)와 상보(相補)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상향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이는 동양예술이 현대의 21세기에도 우리 사회의 통합과 치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증거이다.
본 글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옛 그림을 통하여 자신에게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함에 있다. 즉, 이를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는 곧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의 활용을 통하여 접근할 수 있다. 예술의 감상은 누구든 자각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우리 옛 그림의 감상도 곧 이를 향유하는 자의 몫이다. 이는 가치의 대상이며 또한 발견의 대상이다. 한 장의 그림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옛 문인의 그림은 문인화이다. 우리 문인화에는 우리 옛 문인들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삶이 담겨있다.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그 함의와 가치는 무한히 넓다. 이에 대한 감상은 사실상 자신과의 대화이다. 감상은 정해정 답이 없다. 곧 그림 감상의 세계는 상상력의 지극을 통해서 더욱 깊고 넓게 나아갈 수 있다. 이는 꿈보다 해몽이라는 원칙을 보여준다.
현대는 다변화되고 변화의 속도는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동양 예술의 진수인 문인화도 이러한 시대적 인식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즉, 우리가 문인화의 특징을 시화 일률, 시서화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문인화가 가지는 격조이면서 가치이다. 그러므로 문인화를 아무리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문인화 발전의 모색은 결국 문인화에 대한 개념의 정립에 있으며 이는 결국 문인화라는 예술 장르의 본질을 발견하고 이를 회복하는 바에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가는 자기 삶이 곧 예술이다. 그가 누리는 삶은 이상의 추구이면서 가치 경계의 체현이다. 감성 지능적 감상은 곧 더욱 깊은 행복의 세계에 나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젊은 학생들의 감상이 현대인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글은 그림이 곧 자신에게 나아가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 글은 우리의 대표적인 문인화에 대한 젊은 학생(한국외국어대학교)들의 감상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감성의 세계이다. 이를 수정 보완함으로써 대중에게 나아오게 되었다.
젊은 학생들의 그림을 보는 눈은 뛰어나다. 이는 곧 그들의 감성이 뛰어난 결과이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결국 그림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그림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양성희 기자 kotrin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