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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24] 영화 트랜짓 - Transit

기사승인 2021.11.02  1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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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떠난 이를 기억하는 남겨진 사람의 서사 <트랜짓>이 있습니다.

영화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불안하게 울려 퍼지는 독일 점령지 파리의 거리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독일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진행되는 가운데 도시 봉쇄가 시작되고, 도망자 신분인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 분)에게도 시시각각 체포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죠.

그는 나치 비점령지대인 프랑스 비시 정권의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로 도피하고자, 다리를 다쳐 생사를 헤매는 작가 하인츠와 함께 기차에 오릅니다. 

불안, 초조의 긴 이동 시간 속 지루함을 참지 못한 게오르그는 하인츠가 새로 완성한 원고를 읽죠. 

어렵사리 마르세이유에 도착했지만 하인츠의 싸늘한 죽음과 맞닥뜨린 게오르그...

그는 검문 요원들의 눈을 피해 바이델이라는 작가에게 아내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호텔을 찾아가지만 뜻밖에도 그가 이미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되죠.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가방을 건네받게 되는데, 그 가방에는 작가의 원고와 아내에게서 온 편지, 멕시코 대사관에서 온 비자 허가서가 있습니다.

돈이 궁한 그는 처음에는 그저 대사관에 가방을 넘기고 사례금을 챙길 심산이었죠. 

하지만 대사관 직원이 게오르그를 바이델로 착각하는 바람에 많은 것이 원초적으로 뒤바뀌고 맙니다.

영사(마티아스 브란트 분)는 바이델의 아내가 이곳을 찾아왔다며, 어리둥절해하는 게오르그에게 미국과 스페인 경유의 비자를 서둘러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죄송한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게오르그가 응답해보지만... 영사는 출항까지 3주밖에 안 남았다며, 바이델이 맡겼다는 두 개의 비자와 승선 티켓을 건네죠.

그러면서 아내의 이름(마리)을 겨우 기억해내는 게오르그를 의심하는 대신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그야말로 엉겁결에 바이델이 되어버린 게오르그... 그는 나는 "아내 마리를 이미 잊었다"는 답으로 대신하며, 아예 작가 바이델로 신분을 위조해 멕시코로 떠나기로 맘먹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신비로운 한 여자로부터 온전히 틀어집니다. 

투숙할 곳을 찾던 게오르그의 등을 반갑게 두드리던 생면부지의 여성(파울라 베어 분)은 그가 돌아보자,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듯 웃음을 거두고 빠르게 사라지죠. 

이후 레스토랑과 멕시코 대사관 등 게오르그가 옮겨가는 장소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검은색 코트에 세련된 구두, 그리고 지친 걸음걸이의') 그녀는 잠시 들렀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그 와중에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아내 멜리사(마리암 자리 분)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그들 부부의 아들 드리스(릴리 바트만 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죠. 

게오르그는 천식으로 누워있는 드리스를 위로하며 고장 난 라디오를 수리해줍니다.

그런데 고친 라디오에서 게오르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줬던 한스 디터 휘시의 '저녁노래(Abendlied)'가 흘러나오죠. 그는 이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릅니다.

"나비는 날아 집에 가고
대구는 헤엄쳐 집에 가고
코끼리는 쿵쿵대며 집에 가고
여우와 기러기, 고양이와 쥐,
남편과 아내도 모두가 집에 갑니다
                - - - - - - - - -
모든 것이 자고 모든 것이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침묵하고 모든 것이 말합니다
저녁은 이미 우리 집에 앉아 있습니다"

이 자장가 풍의 노래에서는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 또 애잔함이 짙게 묻어 나오죠.

드리스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게오르그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의사 리차드(고데하르트 기제 분)를 찾아가는데, 뜻밖에도 그의 곁엔 계속 마주쳐온 묘령의 여인이 서있습니다. 

리차드는 자신의 아내는 아니지만 그 여성을 마리라고 소개하며, 그녀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 말하죠. 

게오르그는 리차드의 동거녀인 마리가 다름 아닌 바이델의 아내로, 비자를 갖고 있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어지는 <트랜짓> 후반부는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1942년 연출작 <카사블랑카> 프레임을 절묘하게 변주합니다. 물론 절망적인 결말은 완전히 다릅니다만... 

게오르그 입장에서는 자기를 바이델이라고 속인 것 때문에 마리를 만날 수밖에 없죠.

역설적이게도 이런 '부조리의 우연적 
상황' 속에서 마리와의 재회는 '필연적'으로 계속됩니다만... 마리에게 그토록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오르그의 처지가 은유적 함의(含意)로 품어져 오죠.

이런 세리오스 풍의 우화적 상황은 게오르그가 호텔에 체크인하는 시퀀스에서 재현됩니다.

"단속이 뜨면 빈털터리가 된다"며 일주일치 숙박비 선불을 요구하는 악덕 호텔 여주인을 대하며 체류 허가증이 없는 게오르그는 절망합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야 하는 그는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다'며 간청하지만 여주인은 한술 더 떠 그걸 증명해보라고 말합니다.

게오르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푸념할 뿐이죠. "그러니까 여기에 머무르려면 여기에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하라는 얘기네요?"

페촐트 감독의 <트랜짓>은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나라>, <옐라>, <바바라>와 <피닉스>를 통해 그가 꾸준히 천착해 왔던 독일인들의 정치, 사회적 불안에 관한 논의가 
<트랜짓>으로 밀도 있게 수렴되고 있는 것이죠. 

다만 나치를 피해 도망간 난민들의 도착지가 오늘날의 마르세이유로 조명되는 풍경이 이질적입니다만...

이 이질감은 시대를 초월한 유럽의 난민사를 타임 리프트의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트랜짓>에서 난민 문제를 논하는 페촐트 감독의 태도는 사뭇 조심스럽죠. 

게오르그, 리차드, 마리 세 사람의 상황을 전하는 방법도 제3자인 내레이터라는 존재를 통해서입니다. 

즉, 난민 문제와 관계없는 이를 내세워 주인공들과 거리를 두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로 상황을 전하는 식입니다. 

페촐트는 난민을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 존재하는 정체성'이라고 정의하며,
그가 상상한 이미지를 영화 속 게오르그로 형상화했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난민인 이 세 인물을 유령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신분을 빌려서만 현재의 자리에 머물 수 있고, 마리 또한 그런 게오르그의 주변을 배회하죠. 

아이러니하게도 마리는 함께 멕시코로 넘어갈 남편 바이델을 기다리지만 이미 죽은 남편은 마리에게 돌아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배에 올랐지만 끝내 마르세이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심해 속으로 수장된 리차드에 이르기까지... 세 주인공은 각자 다른 사유(事由)와 방식으로 도피에 실패하죠. 

계속 공간을 옮겨가지만 옮기는 과정조차 여의치 않은 신원 불명의 유령들... 영화는 이 세 사람을 통해 아무 데에도 정착할 수 없는 난민들에게로 관객의 관심을 돌리고자 합니다. 

페촐트 감독은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1940년이 아닌, 현재의 마르세이유로 옮겨 재창조하는 식으로 현시대의 상황을 과거에 믹스매칭 시켰습니다.

그는 통행증 한 장으로 삶이 결정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현안이 되고 있는 난민의 문제를 암유적으로 담아냈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모두 독일 사람으로 프랑스에 살면서도 독일군에게 쫓겨 다니는 처지인... 독일과 프랑스 경계의 사각지대에 위태롭게 머무르는 이방인으로 자리합니다.

난민을 거부하는 세계와 유령처럼 정처 없이 부유하는 난민들의 비애는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며, 따라서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올곧게 따진다는 게 무의미할 것입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을 떠나려고 하는 유럽 난민들의 이야기인 <트랜짓>에선 비시간성 아나크로니즘의 묘사, 곧 시대착오적으로 찍은 듯한 느낌의 의도적 연출이 장중 곳곳에 보여집니다만... 

영화는, 오늘날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동계 난민들의 실상처럼 현재에도 동일한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드리스 가족과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자 걱정이 된 드리스가 소년의 집을 찾아간 장면에서도 겹쳐집니다.

드리스와 그의 엄마는 이미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고... 대신 게오르그는 불안에 떨고 있는 다수의 북아프리카 난민들과 맞닥뜨리게 되죠.

이어 화면은 호텔에서 불법체류자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시퀀스로 연결됩니다. 

체포를 면한 게오르그와 다른 투숙자들은, 처절하게 소리 지르며 압송되는 여성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레이터는 무심한 어조로 말하죠. 

"그는 여자가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남편과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다들 그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동정심도 없는 걸까. 자신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걸까. (한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한참을 서로 보다 눈을 돌렸다. 그는 왜 모두가 조용한지 알았다.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걸. "

그렇게... 난민을 바라보는 현시대의 뒤틀린 시선을 빗대어 잡아내며, 난민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낸 페촐트 감독의 달란트는 놀랍기 그지없죠.

그의 후속작 <운디네>(2020)에서도 합을 맞춘 프란츠 로고스키와 파울라 베어는, 마르세이유를 떠나지 못하며 상대가 떠난 자리를 속절없이 더듬는 게오르그와 마리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연기했습니다. 

1. 영화 <트랜짓 - Transit> 트레일러 
https://youtu.be/GP05VAC1Q80
 
1940년대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한 작품 <트랜짓>은
구 동독 출신 작가 안나 제거스의 나치 치하 망명 체험을 토대로 한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감독 페촐트는 원작이 가진 특징을 살리면서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시네마를 직조해냈습니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들의 이야기를 가져오되, 현재의 도시 모습과 생활의 일부를 차용하는, 곧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으로 전복시켜놨죠.

정황 상 전쟁 중임이 명확하지만 전장의 포화나 총성은 없습니다. 

독일 나치나 유태인 수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묘사도 없으며, 심지어 주인공 게오르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망명자 신분으로 설정되죠.

'떠나기 위해' 마르세이유에서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은 게오르그와 소년 드리스의 공놀이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드리스는 게오르그를 향해 연거푸 킥을 행합니다만 그는 모든 슈팅을 막아내죠 

게오르그는 "아무리 독일 골키퍼가 최고라지만 어떻게 한 골도 못 넣을 수 있냐" 라며 속상해하는 드리스를 향해 말해줍니다.

"네가 어디로 찰 지 너무 티 나잖아. 네 오른발 때문에 모든 게 다 보여!"

자신들이 진정으로 어디를 가고 싶어 하는지, 또한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지 절박함이 있는 난민들... 

어떤 사람은 그런 상황을 이용해 돈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런 과정에서 죽기도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필사적(?)으로 들려주고 싶어 하죠. 

수십 장의 증명사진을 갖고 다니는 유명 지휘자, 체호프의 단편 속 주인공처럼 개를 데리고 다니는 귀족풍의 유대인 중년 여성(바르바라 아우어 분)이 그러합니다만... 

결국 마에스트로는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부인은 게오르그에게 레스토랑에서 최후의 만찬(?)을 선사한 후 난간에서 떨어져 자살하고 맙니다.

페촐트는 그렇게, 극 중 유령과 같은 주인공들을 통해 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난민들에게로 시선을 옮겨가며, 동시대의 난제와 질곡의 미스터리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는 것이죠. 

영화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경유지(트랜짓)라는... 해서 또 가야만 하는, 그리고 불안과 기다림의 경유지에서 머무는 삶 자체도 허락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굴레적 상황이 바로 '인간의 삶' 이라는 메시지를 암유하고 있습니다. 

도착지가 평생 정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죽음을 위해 경유하는 곳이라는 슬픈 현실을 말이죠.

'마지막 비상 탈출구(Exit)'가 돼버린 마르세이유에서 신분세탁을 하는 게오르그처럼, 출국비자를 위한 필사의 노력과 함께 벌어지는 사건들...

감독 페촐트는 공간적 개념인 '경유지 트랜짓)'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자유를 향한 갈망 속 여자와 남자, 산 자와 죽은 자, 또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사이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의 서사를 정치한 솜씨로 풀어냅니다.

영화 속에서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난민들의 희망... 그러나 그 희망은 나날이 깎여만 가고, 고통의 시간을 하릴없이 견뎌야만 하는 절박함, 그 끝없는 기다림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요.

뜨거운 간절함이 있는가 하면 포기와 권태, 부끄러움, 무력감이 공존하고 파시즘의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

게오르그는 위조된 신분으로 주변을 속인 채, 유일한 희망인 마리와의 사랑을 꿈꾸며 멕시코에서의 새로운 삶을 원하죠. 

그러나 "당신은 누구죠?"라는 마리의 질문에는 끝내 대답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마리는 게오르그를 향해 영사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 바이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묻죠.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게오르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가 신분을 빌린 작가 바이델처럼 누군가에게는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또 다른 상황에서는 게오르그가 드리스 가족에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일 터...

"남겨진 사람은 상대를 못 잊는다"는 마리의 대사는 마지막까지 깊은 여운을 드리웁니다. 

https://youtu.be/ZzSb_uUTWpc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역사의 중요한 지점에 한 개인을 배치하고, 또 집요하게 관찰합니다. 

그는 극 중 죽은 작가 바이델의 원고처럼 살게 되는 주인공 게오르그의 삶을 시종 무채색의 톤으로 들려주죠.

살아있다고 믿으며 남편 바이델을 찾아 헤매는 '마리'. 그런 마리와 함께 떠나기를 열망하는 '게오르그'...

드라마의 기저에는 '바이델의 글' 이 있고, 그 위엔 바이델로 행세하는 '게오르그의 삶' 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레스토랑 바텐더가 게오르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레이터로 자리하죠.

"방에서 게오르그는 작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 원고를 집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우리 인생은 마치 영화 속 삶처럼 보인다."

바이델의 죽음을 통해 유추되는 유럽 문명의 사멸,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감정의 삼각관계, 타자의 죽음과 낯선 국외자들과의 마주침, 불가해한 충동에 사로잡히며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군상 등...

페촐트는 이처럼 도피와 탈출을 동력으로 삼는 내러티브의 다각적인 구도를 통해 모든 삶의 서사가 모여져 결국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메시지를 정치한 층위의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트랜짓>은 <바바라>와 <피닉스>에 이은, 억압된 역사적 시대의 사랑 3부작의 정점으로 우뚝 서죠.

장면마다 상황은 지연되고 불투명한 것들로 뒤섞여지는데, 시대와 인물, 사건의 정체가 모두 모호한 가운데에도 환상의 지점에 자리매김케 하는 페촐트 감독 특유의 섬려(纖麗)함은 선명합니다. 

하여, 그는 사회적 난제와 시대성 뒤로 오직 사랑이라는 불투명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휘몰아치는 시간 속 아우라... 곧 영화가 전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헌사해주죠.

2.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 모음곡 중 제9곡
'숲 속의 뻐꾸기(Le coucou au fond des bois)'
- https://youtu.be/bVlnyY3AiFk

위트 있는 기지와 날 선 풍자가 번뜩이는 작품인 '동물의 사육제' 모음곡 중 제9곡 '숲 속의 뻐꾸기'는 <트랜짓>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이죠.

게오르그가 드리스의 집으로 가 아이의 엄마에게 남편 하이츠의 죽음을 알릴 때 조용히... 영화의 주색조처럼 '있는 듯 없는 듯'의 센티멘트로 흐르죠.

두대의 피아노가 깊은 숲 속의 적막한 풍경을 연주하는 가운데, 클라리넷이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단순하고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3.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페레타 
<박쥐 - Die Fldermaus> 중 'Du und Du(You and You)' 왈츠 Op. 367 
- 마리스 얀손스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Ko06YPp3qqw

침울한 어둠의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설핏 비치는  햇살의 헌사랄까요.

<박쥐> 2막 속 화려한 빛깔의 폴카와 함께 신나게 어우러지는 이 'Du und Du' 왈츠는 장 중반 그야말로 잠깐 등장합니다.

4. 한스 디이터 휘시 'Abendlied' 
https://youtu.be/GRJNlR9V8T4

5. 데이비드 번 'Road to Nowhere' 
- 토킹 헤즈 노래
https://youtu.be/LQiOA7euaYA

영화 종반부, 게오르그는 마리와 함께 멕시코로 떠나기 위해 바이델의 이름으로 두 장의 배편을 영사관에 요구해 관철시킵니다만... 마리는 그것을 바이델이 돌아온 증거로 오인해서 받아들이죠.

마리는 바이델이 배에서 기다릴 것으로 상상하며 달리는 택시 안에서 게오르그에게 들뜬 표정으로 말합니다. 

“그의 표정을 상상해봐요. 난간에 서 있을 때, 이름을 속삭이면 뒤돌아보겠죠.” 

고민 끝에 결국 차에서 내린 게오르그는 곧 뒤따라가겠다고 둘러대며 마리를 홀로 떠나보냅니다. 

그러곤 절망감에 빠져 호텔방에 널브러져 있는 리차드에게 배표를 쥐어주며 어서 마리와 함께 멕시코로 떠나라고 이르죠.

다음날... 게오르그는 카페에 앉아 얼핏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마리의 뒷모습을 목격합니다.

배표를 양보해 억지로 떠나보낸 리차드와 함께 그녀가 배에 승선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여객선 회사에 들러 탑승객 명단을 다급하게 확인하던 게오르그는  멕시코를 향해 떠난 몬트리올호가 기뢰에 맞아 침몰해 전원 몰살됐다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게오르그의 눈에 비친 마리는 단지 환상인 걸까요? 혹은 과거의 기억과 열망이 현재에 깃들어 떠오른 것일까요?

게오르그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Nowhere)... 낯선 시간의 밀실에서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여, 목적지 없이 매번 앉았던 카페의 한 자리에서 머무르며 하염없이 기다릴 뿐인 게오르그를 영화 속 내레이터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문을 등지고 앉아 문이 열릴 때마다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매번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난 그에게 은신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드디어 또 한 번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죠. 누가 온 건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작은 미소를 보이는 게오르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그 막을 내리죠. 

침묵 속에 홀연히 암전(暗轉)되는 화면과 함께 풀어지는 엔딩 크레딧에선 토킹 헤즈의 'Road to Nowhere' 가 흐릅니다.

중의적인 타이틀의 이 노래는 발랄하고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와는 달리, 자못 철학적인 사유의 노랫말을 통해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인생의 허망함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죠.

'있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드라마 <트윈짓> 속 어디로 떠나야 할지 너무도 잘 알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망명객과 난민들의 애타는 심상을 이토록 처연하게 대변할 수 있을까요.

전작 <피닉스> 피날레 신의 숨 막히는 반전을 진중한 울림으로 감싸 안는 'Speak Low'처럼 말입니다.

" 우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어디 있었는지는 몰라

우리는 무엇을 아는지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뭘 봤는지는 말할 수 없어

우린 아무 데도 없는 곳으로 가고 있어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고 
있어 "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칼럼을 쓰며 강의도 하고 있고, 조만간 책으로 출판 예정이라고...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혁신경영관으로 재직 중이다.

- 李 忠 植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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