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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21] 피닉스 - Phoenix

기사승인 2021.09.25  22: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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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히치콕풍 스릴러로 풀어낸 기억과 정체성, 그 우화적 퍼즐게임의 서사 <피닉스>가 있습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6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온 얼굴에 붕대를 감고 피투성이가 된 채 독일 국경으로 입국하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되죠. 

검문소 미군들은 가혹하게도 그에게 손전등을 들이대며 얼굴을 보여주길 강요합니다.

그 여성은 다름아닌 아우슈비츠에서 얼굴에 총상을 맞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가수 넬리(니나 호스 분)였습니다.

넬리는 유일하게 곁에 남은 친구 레네(니나 쿤첸도르프 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베를린으로 돌아와 성형수술을 받게됩니다. 

전쟁은 그녀의 얼굴에 참혹한 상처를 새겼고,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죠.

그토록 예전의 얼굴을 되찾고 싶었던 넬리는 수술을 마친 후 전혀 달라진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며, 레네를 향해 절규합니다. "넌, 나 알아보겠어? 나 알아보겠냐고?"

넬리는 나치의 대학살이 자행된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댓가로 그만 얼굴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시종일관 넬리를 성심껏 보살펴준 친구 레네는 전쟁의 참화를 그만 잊고, 유대인들이 귀환하기 시작한 이상향 팔레스타인으로 함께 떠날 것을 넬리에게 제안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행을 주저하며, 헤어진 남편 조니(로날드 제르펠트 분)찾기에 매달리는 넬리... 레네는 그런 그녀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냅니다.

"조니는 널 배신했어. 네가 체포됐던 1944년 10월 6일, 심문 끝에 유대인인 너를 밀고하고 풀려난 조니는 덕분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어. 다시 피아노 연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네 돈을 노리고 있는 거고."

지옥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였것만, 설마 조니가 그런 짓을 했을까...  넬리는 번민하고, 또 괴로워합니다.

넬리가 겨우 수술을 마치자마자 찾아간 과거 자신의 집은 전쟁 과정에서 벽돌 더미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감독은 이 폐허 묘사를 통해서 이미 넬리의 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유합니다. 

넬리의 집이 폭격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것처럼, 깨어진 거울 조각에 비친 그녀의 형체도 본래의 모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 전혀 알아볼 수 없죠.

넬리는 쓸쓸히 되뇝니다. "다 사라지고 없어..."

수소문 끝에 주둔 미군들을 상대하는 클럽 '피닉스' 에 찾아간 그녀는 마침내 그곳에서 허드레일을 하는 남편 조니를 발견합니만, 이름조차 바꾼 그는 넬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죠.

이제 그녀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픈 집착과 더불어, 레네가 알려준 조니의 비밀에 대해 확인하고자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합니다. 

넬리는 자신이 진짜(?) 아내임에도 남편 조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한없이 고통스러워하며, 전쟁 전 행복했던 시절을 되살리고 싶은 갈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죠. 

그러나 넬리가 알던 거의 모든 이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휘말려 죽었고, 일부는 알고 보니 자신을 팔아넘기거나 배신하는데 일조한 상황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왔음에도 남편 조니조차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으로...

자신이 진짜 넬리가 맞는데도 오히려 대역을 자처해야 닮아 보인다는 소릴 듣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그녀의 혼란을 부추깁니다.

넬리는 그 비통함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넬리와 닮은 넬리’ 에게 아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하는 조니와 맞닥뜨리게 되죠.

아내가 죽었다고 확신하며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조니는 넬리에게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아내는 가난했지만 죽어서 부자가 됐죠. 하지만 죽었다는 증거가 없어 그녀의 유산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내 아내 역할을 해줘요. 돌아온 생존자로서 유산을 찾은 다음 나누는 겁니다."

이제 넬리는 자신이 취해야 할 답을 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유산을 넘어선 '진실찾기 게임' 을 시작하죠.

'가짜로서 진짜를 연기' 하며 제발 남편이 자기를 알아봐주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조니 앞에서 '에스더' 라는 다른 인물로 자처하는 순간에야 오히려 아내 넬리와 비슷해 뵌다는 소리를 듣게 되죠.

이토록 기구한 운명의 두 사람은 넬리의 행세를 해내기 위해 부부의 기억을 복원하는 연습을 수행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조니는 에스더란 여인이 기가 막히게 넬리의 필체를 흉내 내거나 '생전의' 넬리가 입던 옷과 화장을 재현하는 걸 겪으며 순간 순간 혼란과 충격에 빠져들다가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아 돌아온 아내의 목소리, 걸음걸이까지도 좀처럼 눈치채지 못합니다.

반면, 넬리는 재현을 위한 훈련 과정을 치루며 이미 전쟁으로 사라져버린, 부부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간 듯한 몽환적인 감정에 빠져들죠. 

친구 레네는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된 현실을 직시하라며 넬리를 만류하지만, 그녀는 지난날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넬리가 팔레스타인에 동행할 것을 끝내 거절하자, 레네는 급기야 권총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죠. 

레네는 넬리에게 베를린은 유대인에게 여전히 위험한 곳이니 권총을 주며 호신용으로 사용하라고 당부하지만, 정작 넬리가 받은 권총은 끝까지 사용되지 않는 맥거핀으로 남습니다. 

반면 레네가 보유했지만 화면 속에 등장하지 않은 권총은 그녀를 역설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태생부터 어긋났으며 팔레스타인인을 탄압한 이스라엘은 이상향이 될 수 없었다는 의식의 반영으로 해석되죠. 

독일의 유대인 학살 고발은 물론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국까지 비판하는 역사의식이 엿보입니다.

넬리는 레네의 유서를 통해 자신이 수용소에 가기 전 조니가 이혼 수속을 마쳤음을 알게 됩니다. 

조니는 유산 상속 자격이 없으며 윤리적으로도 넬리를 배신했음이 드러난 것이죠.

그럼에도 넬리는 조니가 시키는 대로 외양을 다듬고 수용소에서의 스토리까지 재창조한 끝에, 홀로코스트 이전의 자기 자신과 거의 유사한 상태까지 도달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를 배신했던 조니의 혐의는 점점 사실로 밝혀지지만... <피닉스>는 끝내 남편 곁에 머무는 인물의 속내를 낱낱이 끄집어내지 않은 채, 그 심연의 비사를 내밀하게 지켜내죠. 

때로 남편이 몰두하는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질투마저 느꼈던 넬리는, 비록 얼굴은 달라졌어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하여 그녀는 거듭 질문하고, 또 확인하죠. "우린 어떻게 만났어요?",  "넬리 사진 갖고 있어요? 꼭 보고 싶어요."

이토록 극적인 전제를 품은 드라마 <피닉스>는 전후 베를린을 무대로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직조한 한편의 우화로 자리하죠. 

관객들은 신파극적 정념 또한 짙은 영화 <피닉스>를 통해, 주인공 넬리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믿음, 혹은 집착의 응어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를 기차역에서 맞아들이는 가짜 퍼포먼스를 계획한 조니는 넬리에게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히려 하죠.

'이래야 우리가 원하는대로 된다' 며 조니는 전합니다. "당신은 동부에서 기차를 타요. 우리는 역에서 기다릴 겁니다."

남편도 몰라보는 그녀를 지인들은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요... 넬리는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조니를 납득시키려다 말고 둘 사이의 첨예한 간극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붕괴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살아서 돌아온 사람... <피닉스>는 이 둘의 대화를 로맨스의 자리에서 도덕의 문제로까지 옮겨놓죠. 

넬리의 얼굴이 전혀 다른 형상으로 ‘재건’('복귀')되었듯... 전후 베를린에서 사람들은 전과 다른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 
<아이 워즈 앳 홈, 벗 - I was at home, but> (2019)의 앙겔라 샤넬레크,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가리는 영화 
<휴가 - Vacation> (2007)의 토마스 아슬란과 더불어 '베를린 학파' 라 불리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를린장벽 붕괴를 근거지 삼아 독일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감에 천착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죠. 

평범한 이들의 미시적 일상사를 리얼리즘과 장르적 터치를 뒤섞어 다루어온 페촐트 감독은 <피닉스>에선 멜로드라마의 뼈대 위로 누아르적 심상을 더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피닉스>는 자못 오페라틱한 작품으로,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 테너 세 명에게 역할이 집중된 챔버 콘서트 오페라를 연상케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소프라노인 주인공 넬리의 역할일진데, 니나 호스처럼 이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는 떠올리기가 어렵죠.

<바바라>에 이어 <피닉스>에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과 콜라보한 니나 호스는, 바싹 마른 내면을 과거의 기억으로 회복해보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넬리를 처절한 선뜩함으로 연기해냈습니다. 

극 중반부, 넬리가 조니 앞에서 포로 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시퀀스는, 인물의 이중적 위치를 복잡미묘하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한 니나 호스의 연기로 충일하게 채워지죠.

조니는 넬리 역의 에스더에게 아내가 좋아했던 배우처럼 머리에 염색하고  화장하기를 권유합니다만...

넬리는 그 차림으론 수용소에서 나올 수 없다며 본인이 겪었던 참상을 그저 어디서 읽은 얘기처럼 털어놓습니다.

"수감자들이 둘러서 있는 가운데 막 들어온 사람들의 옷을 더듬었어요. 지폐가 있는지 확인했죠..."

페촐트가 <피닉스>를 '트라우마를 숨기려는 이야기' 로 정의했던 것처럼, 극 중 넬리는 본인의 체험을 지어낸 허구라고 말하면서도 조니가 부여한 가짜 역할극을 진짜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짜가 되어버린 실제 경험이 진짜로 변용돼가는 가상의 연극에 함몰된 형국으로...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기 보다는 행복했던 시절의 향수를 통해서 고통을 잊고, 또 그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피해자의 이율배반적인 안타까움이 바로 이 장면에 선연하게 녹아 있는 게지요.

1. 영화 <피닉스 - Phoenix> 트레일러
- https://youtu.be/PMIf_PCPZ-4

- https://youtu.be/Kka2dXuKNwg

- https://tv.kakao.com/v/420577927

모든 전쟁은 여자와 소수자들에게 적대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울러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는 진정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각 개봉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2014년 영화 < 피닉스 > 또한 이러한 기본적 정서를 공유하죠. 

페촐트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단선적으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쟁점들을 복잡 다단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로 풀어내는 작업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습니다.

그의 수작 <바바라> (2012) 와 <트윈짓>(2018) 사이에 위치한 <피닉스>는 제2차대전 당시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주인공의 정체성 문제로 연동시킨 또 다른 연작으로 자리하죠.

주인공 넬리와 그녀를 배신한 남편 조니와의 애증이 교차하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로 인한 상흔과 전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 건국을 모색하던 시기의 쟁점을 절묘하게 씨줄 날줄로 교차시켜 확장시켜낸 <피닉스>...

관객들은, 정체성의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인공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폭넓게 해석하고, 또 그 의미를 추론하는 지적 유희에 동참하게 됩니다.

영화를 복잡한 치정극으로 보건, 고도의 은유로 묘사된 독일과 이스라엘의 전후와 형성 과정의 역사극으로 보건, 그 해석은 관객의 몫이죠. 

하지만 전자이건 후자든 간에 두 관점은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듭하며 서로의 몸을 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에 따라, 아우슈비츠에서 심각한 외상을 입은 여자가 전후 베를린에서 새 삶의 양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아낸 드라마의 색깔과 표정은 다른 결을 띠게 될 테니까요.

사랑과 정체성의 문제를 역사적 미로 위에 펼쳐내는 페촐트 영화의 묘한 비감미는 <바바라>, 또 <피닉스>와 <트윈짓>을 아우르는 삼부작 모두 선명합니다만...

그중에서도 <피닉스>야말로 페촐트의 필모그래피에서 통렬한 엔딩으로 기억될 만하죠. 

독일 음악가 쿠르트 바일의 유명 재즈곡 'Speak Low(나지막이 말해)' 를 오래 흥얼거리게 될 장면과 함께 말입니다.

2. 영화 피날레 'Speak Low' 신
- 니나 호스(OST) 
https://www.dailymotion.com/video/x3gcxpe
넬리는 남편 조니를 향한 의심을 지워버린 채, 자신의 과거를 묻어버림으로써 새롭게 남편과의 출발을 시도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되찾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넬리는 조니의 각본과 연출대로 넬리를 연기하면 할수록 자신이 예전의 넬리가 결코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연출적 상황이었지만, 기차역에서 조니, 그리고 옛 친지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이룬 넬리...

그녀는 조니에게 피아노 반주를 부탁하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들 앞에서 'Speak Low' 를 부릅니다. 곡 제목처럼 '나지막이'(low) 말이죠.

극 중 단 한차례 풀어지는 이 노래와 더불어 조니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변해갑니다.

비로소 넬리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조니... 그는 그제서야 아내의 팔목에 지워질 수 없는 낙인으로 새겨진  아우슈비츠 수용번호를 발견하죠.

가사에 내포된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이 넬리와 조니, 두 사람의 애환을 타고 파도처럼 표표히 밀려옵니다. 그것도 불과 2분여 만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니를 뒤로 한 채, 넬리는 홀연히 떠나며 남편과의 질곡어린 관계를 끊어내죠.

'Speak Low'는 그렇게, <피닉스>의 피날레를 감싸안는 압권의 울림으로 스며져옵니다.

"그대여, 
사랑을 말할 땐 나지막이 말해줘요
우리 여름날은 시들어가요, 
너무나 일찍,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 마치 표류하는 배처럼 우린 멀리 떨어지겠죠, 
너무나 일찍
나지막이 말해주세요, 그대여, 
나지막이 말해줘요.

사랑은 불꽃이라!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어요. 너무 일찍, 너무 일찍

내가 어디에 가도 내일은 가깝고, 어느새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항상 빠르게 흘러갑니다

시간은 이렇게 긴데 사랑은 너무 짧아요
사랑은 순금 같은데 시간은 도둑 같아요

우린 늦었어요, 그대여, 우린 늦었어요
막이 내려오면 모든 게 너무 일찍 끝나버려요, 너무 일찍, 너무 일찍

난 기다릴래요, 그대여, 난 기다려요,
내게 나지막이, 사랑을 말해주겠어요? 
지금 바로요"

- 작곡가 쿠르트 바일 연주
https://youtu.be/VgQJvNhuiAE

옥덴 내쉬의 가사에 쿠르트 바일이 곡을 붙인 ‘Speak Low'(나지막이 말해줘요).

이 곡은 셰익스피어 희곡 <헛소동>에 나오는 'Speak low, if you speak love'(사랑을 말할 땐, 나지막이 말해줘요) 라는 명대사에서 착상된 노래입니다.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럽에서 이름을 널리 떨친 독일계 유대인 쿠르트 바일은,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작곡가이지요. 

그가 미국에서 작곡한 작품들 가운데 대표작은 < 어둠 속의 그대 >, <비너스의 한 번의 손길>, <거리의 장면>과 같은 작품이 있는데요, 이 'Speak Low'는 뮤지컬 <비너스의 한 번의 손길>에 수록된 곡입니다.

- 사라 본
https://youtu.be/5rtFtj2Xwpc

- 엘라 피츠제랄드
https://youtu.be/2CwPnp2VCYM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피닉스>는 프랑스 작가인 위베르 몽테이에의 소설 'Le démon est mauvais joueur' 를 각색한 필름입니다. 

이 작품은 1965년에 J. 리 톰슨 감독, 잉그리드 튤린, 막시밀리안 셸 주연의 <Return from the Ashes>라는 영국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었죠. 

페촐트는 산만한 흐름의 장편 원작을 충실하게 옮기는 대신, 핵심적인 아이디어만 가져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해 날렵한 이야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위적 문화의 중심지였고 도발적 공연의 캬바레가 융성했던 베를린의 잔재에 점령군인 미국의 대중문화가 결합된 풍경의 클럽 '피닉스'...

그곳에서 재회한 과거 부부의 풍경은 역사적 배경과 두 남녀의 돌이킬 순 없지만 그림자는 가득 남은 감성을 위태롭게 교차시킵니다.

이후 외줄타기처럼 연이어 전개되는, 에스더로서의 넬리가 남편 조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감독의 정치한 연출과 구성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이어나가죠. 

넬리의 감정이 요동치는 수차례의 변곡점들은 그녀의 사소한 신체 동작과 태도, 화장과 의상의 작은 변화들 같은 소소한 미장센들로 차곡차곡 섬세하게 변주됩니다. 

자칫 지리하거나 늘어질 법한 중반부를 전쟁이라는 파국적 상황이 낳은 기구한 현실 설정으로 풍부하게 채워내는, 노련한 경지 덕분에 서사 전개에 있어서 빈틈은 찾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뭇 과격한 통속극적 설정은 전후 독일 사회와 생존자들에 대한 독특한 코멘트로 비춰지죠. 

가장 눈에 뜨이는 건 피해자와 방관자의 비대칭적인 관계로... 영화는 거의 완벽한 반전의 결말을 통해 그 메시지를 올곧게 전달합니다.

3. 비발디 합주협주곡 d단조, Op.3, No.11, RV 565 - 2악장 '라르고'
- 조진주 와 김지윤 바이올린 / 
TIMF 앙상블
https://youtu.be/dpPNasTsV40

4.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해럴드
(Harold en Italie) Op.16'  
- 콜린 데이비스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https://youtu.be/CWzyz0nnak0

주인공 넬리와 조니 부부가 전쟁 전 클래식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였던 점을 감안한 걸까요...

영화 초반 아주 잠깐이지만 점령군의 파티 배경음악으로 비발디의 '합주협주곡' 11번과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럴드' 속 한 소절이 은밀한 색깔로 흐릅니다.

경건한 코랄 풍의 울림과 악마의 격정적인 멜로디가 뒤섞이며, 간절하게 삶의 구원을 찾아 순례하는 '해럴드' 의 이미지는, 남편 조니의 사랑을 갈망하는 넬리의 고뇌와 헤매임을 은유하고 있지요.

5. 콜 포터의 'Nacht und Tag'
(Night and Day)
https://youtu.be/MgBLj8Jiqos

- 프랭크 시나트라 
https://youtu.be/fFwL1xwNBkU

- 다이애나 크롤
https://youtu.be/OaZdj1ZgiP4

점령군인 미군들을 상대로 여성 듀엣(발레리 코흐 와 에바 베이)은 빅 밴드의 반주에 맞춰, 제목부터가 중의적인 'Night and day', 'Johnny (Du lump)', 그리고 '빛 속의 베를린'(Berlin in light) 을 노래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당신 생각 뿐이에요
달이 뜨나 해가 뜨나 당신 뿐이에요

                 - - - - - - - - - - 

밤낮으로, 
내 품안에 굶주린 그리움이 불타고 있어요

그리고 이 고통은 나아지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내 사랑을 받아줄 때 까지요
밤낮으로, 낮밤으로...'

6. 홀거 힐러 'Johnny'(Du Lump)
https://youtu.be/xr0l_Yi7QtU

안드레아스 모렐의 영화 <빛 속의 베를린 - Berlin in light>에서 배우 다그마 만첼은 역사적인 영화와 쿠르트 바일의 음악을 기리며, 내레이터로서 황금의 1920년대 베를린에 관해 얘기합니다. 

당시 베를린은 문화적 화려함과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불안, 오락 음악과 진보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였죠. 

'빛 속의 베를린' 은 1928년 독일 수도의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힌 페스티벌의 제목인 동시에, 쿠르트 바일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탄생시킨 히트곡으로 <피닉스>의 화면을 촉촉한 어둠의 찰나적 미학으로 품어내지요.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칼럼을 쓰며 강의도 하고 있고, 조만간 책으로 출판 예정이라고...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혁신경영관으로 재직 중이다.

- 李 忠 植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저작권자 © 축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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